왜 우리는 ‘영화’를 사랑할까?
글 · 🫧 서현지
각자 다른 배경과 삶의 자취를 밟아온 우리 무비나잇이지만, 우린 ‘영화’를 사랑한다는, 혹은 기꺼이 사랑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이 자리에 모였다. 문득 근원적인 질문이 고개를 든다. 왜 우리는 이토록 ‘영화’를 사랑할까? 생각해보면 현대 사회에서 영화만큼 비효율적인 행위도 없다. 영화는 당장의 현실을 해결해 주지도 않고, 많이 본다고 해서 삶에 실질적인 혜택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모든 것이 즉각적이고 간편해진 요즘 세상에서, 하나의 세계를 찍어내고 그것을 온전히 앉아 바라보는 것은 찍는 이에게도 보는 이에게도 꽤나 많은 품이 드는 일이다. 효율성이 최고의 미덕이 된 세상에서, 우리는 왜 굳이 이 아름다운 비효율을 추구하는 것일까. 영화가 효율적이라는 대답은 아무도 하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삶의 부조리와 삭막함 속에서도, 인간은 끊임없이 낭만을 품고 동화를 그려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우리에게 바로 그 ‘생생한 꿈’을 허락한다.
영화 <휴고> 속 조르주 멜리에스 감독은 말한다, “영화는 우리의 꿈을 사로잡는 힘을 가졌고, 그 안에서는 모든 꿈이 실현된다"고. 효율성만 따지는 차가운 현실은 꿈꾸는 이들을 철부지 취급하곤 하지만, 어두운 상영관 안에서만큼은 그 어떤 터무니없는 상상도 생생한 현실이 된다.
내게 영화는 언제나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연결해 주는 매개체였다. 영화관을 나설 때 온몸을 감싸던 묘한 해방감, 나 역시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단단한 자기 확신, 그리고 같은 스크린을 바라보며 같은 감정을 공유했던 사람들과의 온기까지. 나 역시 내 삶이 하나의 아름다운 영화 같기를 바랐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유독 선명하게 떠오르는 향기가 있다. 어릴 적 부모님 손을 잡고 처음으로 갔던 영화관의 달콤한 카라멜 팝콘 냄새. 지금도 그 고소하고 달콤한 향을 맡으면, 마치 어제의 일처럼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며 세상이 마냥 신기했던 어린 날의 기억이 깨어나곤 한다. 학창 시절, 시험이 끝나고 해방감에 취해 친구들과 스크린 속으로 완전히 몰입했던 기억, 그리고 영화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어 영화관에서 일했던 날들도 스쳐 지나간다. 한가득 남은 팝콘을 안고 집으로 돌아와 밤새 아빠와 영화를 보며, 서툰 방구석 평론가가 되어 별점을 매기던 밤들은 내 삶의 가장 따뜻한 프레임으로 남아있다. 대학에서 문학과 영화를 공부하며 영화가 단순한 오락을 넘어 한 시대의 ‘삶의 기록’이자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라는 것을 배웠을 때, 영화를 향한 내 시선은 조금 더 깊어졌다. 스크린 이면의 세계가 궁금해 영화제 봉사활동에 뛰어들기도 했다. 화려한 불빛 뒤에서 단 하나의 작품을 위해 묵묵히 땀 흘리는 수많은 스태프의 노고를 보며, 내 열정이 그들에 비해 얼마나 초라한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휴고>의 기차역 시계탑 안에서 보이지 않게 톱니바퀴를 돌리던 소년처럼, 영화라는 거대한 마법은 결국 그 보이지 않는 헌신들이 모여 완성되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나의 영화적 견해는 여전히 짧고, 보고도 쉽게 잊어버리는 영화가 허다하다. 그러나 영화는 여전히 나를 꿈꾸게 한다. 거창한 현실 앞에서 '꿈을 가지라'는 말은 막연하고 버겁지만, 어두운 상영관에 앉아 영화를 마주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휴고>에서 소년은 부서진 자동인형을 고치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삶의 목적을 찾아간다. 우리네 삶도 어쩌면 태엽이 풀려 멈춰버린 기계와 같을지도 모른다. 목적지도 모른 채 방황하는 삶 속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세상을 향해 부리는 가장 건실하고도 아름다운 사치일 것이다.
나는 앞으로 영화를 더 깊이 사랑해 보려 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일은 내게 아주 많은 것들을 되찾아주는 행위다. 어린 시절 꿈 많던 나와 다시 악수하는 일이며,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아빠와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꿈꾸는 일이 사치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기꺼이 꿈을 꾸고자 하는, 이 자리에 모인 ‘낭만주의자들’과 연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서 우리가 부서지지 않고 제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우리들의 영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작은 영화 모임의 한 회차 기록입니다. 더 보고 싶다면 영화 일지 전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