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선택하지도, 포기하지도 못한
글 · 🎖️ 박소정
브로크백 마운틴은 역시 명작이다.
캠핑을 좋아하고 산을 좋아하는 내게 와이오밍의 풍경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초록색으로 가득한 산맥, 맑게 흐르는 물 등을 담아낸 영상미가 너무 좋았지만, 무엇보다 인물들의 감정선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고스란히 전달해낸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고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의외로 에니스와 잭이 재회하는 순간이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이 서로를 끌어안고 키스하는 장면은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을 보며 다른 사람을 보고 있었다. 바로 그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에니스의 아내 알마였다.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재회였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삶이 무너지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마음이 아팠던 인물 역시 알마였다. 그녀는 남편과 가정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진실은 알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아왔지만, 그 사람의 마음이 끝내 자신에게 닿지 못했다는 사실. 게다가 당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도 없는 진실이었다. 그 순간의 참담함을 감히 헤아리기 어렵다.
물론 잭 역시 안쓰러웠다. 그는 에니스를 만나기 위해 먼 길을 오가고, 만나지 못한다는 말에 실망하면서도 아무 말 하지 못한 채 다시 돌아간다. 그 긴 운전 시간 동안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은 넘쳐나는데 그것을 마음껏 표현할 수도, 함께할 수도 없는 삶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반면 에니스는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세상과 타인 앞에서는 무덤덤해보이지만 유독 잭과 관련된 순간들에서는 자주 무너진다. 그렇게 감정을 숨기며 살아온 사람이 왜 잭 앞에서만큼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을까. 그것이 사랑이었는지, 후회였는지, 혹은 그 둘 모두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눈물만큼은 진심으로 느껴졌다.
나에게 브로크백 마운틴은 LGBTQ 영화라기보다 사랑 이야기로 남았다.
정확히는 사랑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사회가 허락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사회를 등질 용기도 없었다. 결국 평범한 삶을 선택하지만 그 삶마저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다. 사랑을 선택하지도 못했고, 사랑을 포기하지도 못했다.
영화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감정적인 문제가 생기면 비교적 빨리 표출하는 사람이다. 답답한 것을 오래 참지 못한다. 그런데 만약 가장 소중한 감정조차 평생 숨겨야 한다면 어떨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고,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도 외면해야 한다면 어떨까.
브로크백 마운틴은 그런 갑갑함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 가지 질문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우리는 흔히 사회의 규범과 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선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누가 정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경계는 한 사람의 인생과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일까.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다만 사랑과 두려움 사이에서 끝내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그 삶이 얼마나 외롭고 슬플 수 있는지를 조용히 남겨둔다.
좋은 영화는 관객에게 정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남긴다고 한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를 스스로 증명하는 작품이었다. 덕분에 나 역시 사랑과 용기, 그리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의 경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작은 영화 모임의 한 회차 기록입니다. 더 보고 싶다면 영화 일지 전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