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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7일

문라이즈 킹덤이 나에게 남긴 것들

글 · 🎖️ 박소정
문라이즈 킹덤이 나에게 남긴 것들

문라이즈 킹덤을 본 직후의 감상은 의외로 단순했다.

'이 장면마저 대칭이라고?'

웨스 앤더슨 특유의 완벽에 가까운 대칭 구도와 파스텔톤의 따뜻한 색감, 동화 같은 분위기 속 절제된 감정 연기, 그리고 은근히 잔혹했던 몇몇 장면들. 여기에 아주 디테일하게 구현된 보이스카우트와 캠핑 콘셉트까지 더해져 보는 재미는 충분했다.

하지만 영화 자체는 내게 큰 감정적 울림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우리가 함께 봤던 영화들에 비하면 비교적 낮은 평점을 줬다.

우리 뉴저지 무비나잇에서는 자연스럽게 각자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나눴고, 샘과 수지가 서로를 알아보고 선택하는 장면을 보며 인간관계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우리가 나눴던 대화와 영화를 다시 곱씹다 보니, 영감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영화 일을 하고 싶었지만 결혼을 계기로 커리어를 바꾸게 되었다고 말한 진모님은, 영화 감독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볼 때마다 아직도 마음 한편이 아프다고 하셨다. 문섭님도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서연님은 영화 감독의 꿈을 포기한 이후, 어렸을 때 그렇게 자주 보던 영화들을 어느 순간부터 보지 않게 되었다고 했다. 알렉스님과 은서님은 영화인의 꿈을 이뤄 각각 폴리 아티스트와 에디터로 활동하고 계신다. 혜정님은 영화에 깊이 감정 이입하며 그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을 즐긴다. 현지님은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화관에서 일하며,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보던 따뜻한 추억들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우리 무비나잇의 멤버들은 모두 한 번쯤 영화를 업으로 삼고 싶었던 사람들, 혹은 아직도 영화를 사랑하는 그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평소였다면 '그렇구나' 하고 지나칠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었는데, 이날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꿈을 다시 꺼내볼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볼까?'

누군가는 감독을 하고, 누군가는 배급을 맡고, 누군가는 제작을 하고, 누군가는 음향을 맡고, 누군가는 글을 쓰는 거다. 우리 모임 안에서 다시 한번 꿈을 꿔보는거다. 특히나 기회가 넘쳐나는 뉴욕과 뉴저지에 살고 있으니까.

생각해보면 우리는 단순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잊고 있던 꿈을 다시 꺼내볼 수 있는 모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당장 무언가를 시작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영화를 보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떠오른, 작은 나만의 상상이자 하나의 영감일 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영화 속 아이들이 캠핑을 하고, 트리하우스를 만들고,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하는 장면들을 보며 케냐에서의 내 유년 시절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캠프아웃을 하고, 학교에서 사파리 캠핑을 가고, 자연 속에서 뛰어놀던 시간들.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도 캠핑을 좋아하고 자연 속에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때의 경험 덕분인 것 같다.

그래서 문득 미래의 내 모습도 상상해봤다.

언젠가 나의 꿈을 이뤄 교육 사업을 하게 된다면, 단순히 공부만 가르치는 곳은 만들고 싶지 않다.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액티비티와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고, 직접 부딪히고 함께 생활하며 성장할 수 있는 교육의 장을 만들고 싶다. 누구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 무해하고 따뜻한 환경 속에서 말이다.

생각해보면 샘과 수지도 그런 환경이 절실했던 아이들이었다. 어른들과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두 아이는 난폭한 행동을 하기도 하고, 함께 가출을 감행하며 자신들만의 작은 universe를 만들어간다.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문제아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들은 그저 자신을 이해해 줄 사람과 안전하게 성장할 공간이 필요했던 아이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좋은 교육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다. 아이들의 과도기를 통제하거나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기를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것. 자연 속에서 뛰어놀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서로 공감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 말이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내가 만들고 싶은 것들에 대한 다양한 영감들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설레는 상상을 하며 잠에 들었다.

이렇게 영화를 통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을 다시 발견하게 됐다. 그래서 문득 영화의 역할이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완성도 높은 이야기여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거창하고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져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이 편의 영화가 내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고, 잊고 있던 꿈을 떠올리게 하고, 앞으로 내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 사람인지 생각하게 해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영화다.

그래서 다시 평가해보려고 한다.

어쩌면 영화 자체의 점수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가 내게 남긴 의미만큼은, 처음보다 훨씬 커졌다.

어쩌면 이 영화는 수지의 쌍안경 같은 존재인지도 모른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을 조금 더 선명하게, 조금 더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작은 마법 같다.

작은 영화 모임의 한 회차 기록입니다. 더 보고 싶다면 영화 일지 전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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