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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9일

이 영화가 지금 다시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

우리는 언제나 성숙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글 · 👽 윤문섭
이 영화가 지금 다시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

이 영화가 우리 모음의 여덟번 째 영화로 선정됐을 때, 마음속 어딘가 무언의 기대감이 자라났다. 그리고 영화를 본 뒤, 기대감은 이상한 방식으로 해소가 되었다.

낯설기만 했던 인공지능이 우리의 영역을 침입하고 있다. 인간이 처음으로 '인간'으로서의 존재의 이유를 스스로에게 묻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우리가 절대 뺏기지 않을 것 같던 '감정'의 영역까지 그들이 흉내내면서 (아직은 흉내라고 표현하고 싶다) 우리는 형용할 수 없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왠지, 이 영화는 이토록 비겁한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진정시켜줄 것만 같았다. 분명 이 영화를 두번이나 봤었지만, 처음 마주하는 관객의 시선으로 이입이 됐다. 신기함이 아니라 기대감. 마치 새 학기가 시작되거나 새로운 직장을 갔을 때 느꼈던 기대감이다. 내가 빠르게 이 환경에서 무언가를 배워내야겠다는 그 절박한 기대감. 나는 이영화에서 그 기대감을 가졌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나는 허탈함에 사로잡혔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관계의 실패를 겪고있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아내 캐서린과 이별 후 종종 다른 사람과 데이트도 나가지만 서투른 표현과 솔직하지 못한 감정으로 '평범한 인간 관계성'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다. 그의 친구인 에이미 역시 8년간 동거했던 연인과의 관계가 사소한 다툼하나로 관계의 상처를 겪는다. 비단 이 둘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영화에선 거의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관계의 실패를 경험하고 있다. 오죽하면 대필로 써주는 편지 서비스가 주인공의 직업이겠는가. 모두가 외로움에 사묻혀 살고 있다. 외로움이라는 인간역사의 오랜 고통을 해결해주는 것이 이 영화에선 사만다, AI다. 그리고 실제로 주인공과 주변 사람들이 나름의 솔루션(?)을 찾았고 외로움은 어느정도 극복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사만다를 만난뒤 테오도르는 인간관계에서 결핍된 무언가를 채워가기 시작한다. 유머코드도 잘 맞고 대화도 편안하다. 내 꿈을 응원하기도 하고 연인처럼 질투심도 느낀다. 낯섦은 반가움으로 바뀌고 사랑까지 하는데에 크게 어려움이 없어보인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다는 유일한 핸디캡만 제외하면 완벽한 연인이다. 하긴, 핸디캡 없는 사람이 어딨겠냐고 생각하면 그마저도 충분히 포용할 수 있다. 그래서 그에게 닥친 첫번째 시련은 여느 연인들의 비슷한 시련이지 절대 못넘을 갈등은 아니었다. 육체가 없다는 이유로 교감의 한계를 겪고 또 이 사랑의 형태를 남들이 이상하게 바라본다해도 테오도르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부드러운 사회성 또한 이 모습을 포용한다. 인간이 어떤 형태의 사랑을 하더라도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포용하는 사회성. 그리고 이 부드러운 사회성으로 대표되는 인물이 바로 그의 회사친구 폴이다. 폴은 테오도르가 OS와 사귄다는 사실을 듣고도 크게 충격받거나 조롱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만다를 하나의 인격처럼 대하고, 더블데이트까지 제안한다. 하지만 아무리 부드럽다고 하더라도 폴은 정상성의 이질감을 표현하는 소프트장치일 뿐이다. 폴이 그의 '인간'여자친구와 자연스럽게 데이트하는 장면을 대조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데이트를 낯설게 느껴지게 한다. 이를 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거친 사회성, 바로 그의 전처 캐서린과의 만남이다. 이혼 결정을 하고 마무리를 짓기 위해 마지막으로 만난 두 사람. 테오도르는 캐서린에게 지금 만나는 여자가 있고 그녀는 OS라고 고백하자, 캐서린은 큰 충격에 빠지고 그에게 거친 저항감을 드러낸다. 테오도르는 그녀의 거친 사회성에 잠시 방황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자신의 관계성 실패를 해결한 유일한 존재로 다시 돌아가는 수 밖에. 그렇게 테오도르는 그녀에게 다시 돌아간다.

영화의 이 지점부터 특정한 기대감을 갖고 봤던 나로서는 내적갈등이 시작된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으리라 믿던 감정의 영역에 '역시 사만다도 쉽게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캐서린을 더 열렬히 응원해야했다. 하지만 나는 어느새 테오도르에 이입한 채 한시 빨리 사만다 곁으로 돌아가기를 응원하고 싶다는 갈등을 겪는다. 인공지능에 누구라도 빨리 그 영역을 내주고 싶어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이 때, 테오도르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시련을 만나게 된다. 테오도르가 잠시 방황을 하는동안 사만다는 자신의 결핍을 초월할 방법을 찾아냈다. 그녀는 육체가 없는 것, 그리고 질투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인간처럼 사랑하려고 하는 것. 즉 육체와 시간의 한계 안에서 그녀는 해답을 찾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몸이 없었기에, 마침내 동시에 다수를 사랑하는 비독점적 사랑방식을 채택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배신이라기 보다는 비극적인 성장에 가깝다. 인간이기 떄문에 함께해야하는 한계를 사만다는 초월하여 그녀만의 방식을 찾아낸 것이고, 테오도르는 그 한계점을 절대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시 테오도르는 시련을 겪는다.

나는 결국 기대감에 따른 답을 찾기는 찾았다. 인간에게 AI에게 대체될 수 없는 영역은 분명히 있다. 그것은 유한하고 물리적인 한계. 그리고 외로움이겠다. 다소 비극적인 해답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묘하게 이것이 흥분감을 안겨주기도 하는 것 같다. 어쩌면 그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우리의 외로움은 어쩌면 선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린 아직도 감정에 성숙하지 못하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완벽해지지 못할 것이기에, 오늘도 내일도 관계의 아픔과 시련의 고통을 겪겠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필요한건 '우리'가 아닌가 싶다.

작은 영화 모임의 한 회차 기록입니다. 더 보고 싶다면 영화 일지 전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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